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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rsing/essay

[essay] 환자를 살리는 간호사

 

95, 92.. 89… 88, 86, 85

무서운 속도로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 원래는 95 이상이어야 할 수치이다. 그나마 92로 타겟을 잡고 있는 분인데도 그 아래로 더 아래로 수치가 떨어진다.

뭐가 문제일까. 바쁜 걸음으로 환자 곁으로 달려가 원인을 찾는다. 두 손으로 인공호흡기의 아나콘다 같은 시퍼런 관을 꽉 조이는데 목 안쪽에서 찐덕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린다. 기도 내에 가래가 가득 차는 바람에 산소 교환이 안 됐던 게 문제였다. 곧바로 가래를 빼주기 위해 흡인할 준비를 한다. 손으로는 석션 카테터로 목에 넣고 눈으로는 환자 상태와 모니터의 산소포화도 수치를 번갈아 본다. 가래가 나오기 시작하면 혹시나 흡인기를 통과하는 가래의 색깔이 이상하진 않은지, 지나치게 묽거나 찐득하진 않은지 관찰한다. 가래를 빼주니 수치가 서서히 올라간다. 다행이다.

그 다음주에 비슷한 환자분을 또 만났다. 시작은 비슷했다. 어김없이 산소포화도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진다. 순식간에 78까지 떨어지는 수치에 담당 간호사 선생님은 빠르게 석션을 시행한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전공의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가까이 가보니 카테터를 통과하는 가래의 색이 초록색이다. 균 감염이다. 녹색의 가래를 한참 동안 뺐지만 수치는 80도 채 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전신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장기가 온통 손상될 수도 있다. 결국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체하는 ECMO를 달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하루, 이틀, 실습일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산소포화도는 70대로 내려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임종 면회가 결정되었다.

내 목소리 들려?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잘 자. 그동안 고생 많았잖아, 우리 걱정 말고 편히 가. 사랑해.
의식이 없는 것 같은데 들을 수는 있는 거냐며 재차 확인하는 간절한 목소리와, 쏟아지는 눈물을 버티는 그 눈가가 슬퍼서, 목구멍에서 일렁이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마음이 아파서 미칠 것 같았다. 가족들의 애틋한 사랑과 간절한 기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렇게 실습 마지막날이 되었다. 퇴근하기 전 환자분의 베드 옆으로 가 한참을 서 있다 말을 걸었다.

바깥에 눈이 와요 아저씨,

제가 아저씨 꼭 기억할게요.

 

 

 

 

 

 


많은 악화 요인들이 겹쳐 애초에 치료가 쉽지 않은 분이었다. 또 내가 실습 기간 동안 본 의료진들은 정말 최선의 최선을 다하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약 수술 후유증이 없었다면,
만약 가래를 더 자주 빼줄 수 있었다면,
만약 간호사가 한 명의 환자를 더 집중적으로,
그래서 감염되지 않도록 잘 살필 수 있었다면,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갖춰졌다면.
어쩌면 그날 내리던 첫 눈을 가족들과 함께 보실 수 있지 않으셨을까.

 





 

보통 간호사의 업무를 떠올리면
주어진 처방에 따라 약을 주는 수동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본 간호사는
가장 가까이서 현재 환자 상태에 대한 모든 걸 파악하고 있으며,
필요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타 의료진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때때로 빠른 판단으로 의료적인 중재를 시행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그런 간호사를 만났을 때 환자는 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잘하면 내가 환자를 살릴 수 있겠구나,
내가 잘하면 내 환자가 살 수 있겠구나.

내 가족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능력있고 섬세한 의료진이 되자고
그렇게 다짐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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