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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rsing/essay

이해하기 쉬운 간호법

진실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진실을 기반으로 올바른 의견을 내는 것이 건강한 논의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마음먹고 찾아봐도 진실이 뭔지 헷갈립니다. 건강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게 안타까워서.. 작은 글이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써봅니다.


✏️ 글을 쓴 목적은?
이 글은 간호법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적었습니다.
 
 
👩🏻‍⚕️ 글을 쓰는 사람은?
저는 간호대학 4학년으로 재학 중이며, 각종 병원에서 수백 시간의 임상 실습을 거쳤습니다.
 
글에 포함된 법안은 의료법과 간호법 원문을 읽고 내용을 발췌했고, 협회의 공식 입장과 인터뷰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더불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사실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거짓은 없지만, 개인의 의견이 들어간 글이라는 점을 참고해 주세요.
 
이 글이 조금이나마 진실을 구분하고, 간호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1. 왜 간호법을 제정하려고 하나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업무 범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현재 간호사의 업무는 간호법이 아닌 '의료법'에 제정되어 있습니다. 아래 내용이 의료법에서 규정하는 간호사 업무 내용입니다. 읽어보면, '병원 급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간호사의 업무로 다소 국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간호사들이 이 일들만 하고 있는 게 아닌데 말이죠.
 

기존 의료법에 있는 간호사 업무 관련 조항

 
 

Q2. 그럼 간호사들이 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일을 하고 있나요?

간호사들은 현재 병원 뿐 아니라 '의료 전문인이 필요한 지역사회' 내에서도 '지역사회 간호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보건소, 근로자 건강 센터, 산모 센터 등에 간호사 인력이 많이 배치되어 있죠.

이를 위해 간호학과 때부터 필수 전공으로 '지역사회간호학'을 이수하고, 해당 과목의 현장 실습은 물론 국가고시도 합격해야 간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습니다.
 
 

Q3. 지역사회에 꼭 간호사가 필요한가요?

그렇습니다.
 
질병에 걸려 증상이 나타나면 치료를 받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병원에 가기 전에 미리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는 것에 대한 요구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병원 치료를 받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일상생활, 즉 가정과 지역사회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질병의 추후 관리도 중요해지고 있죠. 이는 지역사회 차원에서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점차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의료 인력은 늘어나고 있으며, 그 자리는 주로 간호 인력이 채우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역사회에는 의사 인력이 충분치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 의료지식을 가진 인력은 계속해서 요구되고 있으니 누군가 일을 해야 하죠.

또, 원래 병원에서도 대상자를 모니터링하거나 각종 자원을 연계해 주는 일은 간호사가 많이 담당하는 업무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간호사들이 지역사회로 많이 나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정리하자면, 현재 지역사회에서 의료 전문 지식이 필요한 각종 행정 및 사업 기획 등의 역할은 대부분 간호사가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간호 인력이 지역사회에서 이미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의료법 안의 간호 관련 조항들은 지역사회 간호사와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래서 간호법에서는 아래와 같이 '지역사회'라는 문구를 넣어 간호사의 업무를 규정하고 있어요.
 

간호법이 '지역사회 간호사'의 업무를 포함할 수 있도록 추가된 '의료기관과 지역사회' 문구 (제1조)

 
 

Q4.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왜 관련 법을 제정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건가요?

간호법에 반대하는 측의 주요 주장은, 이와 같은 문구가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틀린 사실입니다.
 
아래 첨부한 의료법 원문에서 알 수 있듯이, '병원 개원'과 관련된 항목은 간호법이 아닌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근본적으로 병원 개원은 간호사의 영역이 아닙니다. 간호법에서도 개원을 허가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으며, 따라서 간호법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간호사의 단독 병원 개원은 불가합니다.

의료기관 개설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의료법 원문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또한 간호법에 의한 간호사의 단독 개원은 애초에 불가하다고 밝혔고 간호협회에서 발행하는 공식 입장문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자 간호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간호사가 명확한 업무 범위 내에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자 하는 것이 간호법 본래의 목적입니다.
 


 

Q5. 간호법을 제정하려는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지금까지 이야기 한 '지역사회 간호사의 업무 범위 규정'에 더불어, 간호법 제정의 또 다른 주요 목적은 바로 '간호사의 처우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기존 의료법에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및 조산사와 관련된 내용을 간호사와 함께 다루고 있다 보니, 그 특성이 다소 다른 간호사의 업무/권리/처우에 대한 조항들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를 정확히 하는 것은, 현재 암묵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불법 의료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합니다. 이는 간호사의 권리와 처우 뿐 아니라 환자의 안전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다수의 병원에서는 PA 간호사라는 이름 하에 비교적 숙련된 간호사를 각 과에서 데려가 부족한 의사 인력을 대체하여 의사의 업무를 시키고 있습니다.
 
 

Q6. 간호사의 처우 개선이 법으로 제정해야 할 만큼 중요한가요?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생기는 것이니 간호사들에게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이죠. 하지만, 간호법을 제정하려는 것이 단순히 간호사의 이익만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습 현장에서 제가 본 간호사는,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서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간호는 특히나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보니 로봇이나 기기로 대체할 수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적인 업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요소들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안전한 업무 환경, 함께하는 팀원들, 심지어 그날 그 간호사의 컨디션에도 작은 영향들을 받게 되죠. 그래서 간호사의 업무를 분명히 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간호사가 안전한 환경에서 환자에게 더 나은 간호를 제공할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즉, 간호사의 업무와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간호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질병의 수준이 심각할수록 질 높은 간호를 받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실력 있는 의사가 나를 봐주면 정확한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듯, 질 높은 간호를 받으면 나의 치료 계획을 현실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Q7. 지금 병원 환경은 안전하지 않나요? 왜 간호법을 제정하면서까지 개선하려고 하나요?

현재 한국의 의료 현실은 간호사가 이를 제공하기에 한계가 있어요. 심각한 처우 문제는 높은 이직률과 퇴사율로 이어지는데, 이는 오랜 경험을 가진 간호사들이 임상에 남아 있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능숙한 간호를 제공하는 간호사가 더 많아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처우 개선과 업무 범위는 보장되어야 해요. 단순히 간호대학 정원을 더 늘려 간호사를 많이 만들고, 신규 간호사로 빈자리를 채워봤자 국민들이 받는 의료의 질은 오르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정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아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간호사가 인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적인 환경이 필요합니다.
 


 
위의 사항들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간호법의 목적입니다. 간호법은 간호사가 해야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전한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궁극적으로 질 높은 간호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초석이죠.
 
국회까지 통과한 간호법은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불발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직역 간 갈등', '국민의 건강 불안 심화'라는 이유를 가져와 거부권을 쓰며 간호법 제정을 막았습니다.
 
결국 간호 협회는 최후의 수단이었던 단체 행동을 하겠다고 밝혔죠. 1차 단체 행동은 의사 협회를 포함한 기타 협회들에서 '간호사가 침범하고 있는 본인의 영역'이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간호사가 하고 있는 부당한 업무들을 거부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단체 행동으로 목소리는 내지만, 그 와중에도 일방적인 파업은 선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병원의 마비를 막고 환자에게 위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간호법을 거부하는 것은 진정 국민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인가요?
 
간호법을 거부함으로서 결국 누가 이득을 얻게 되는 건가요?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나요?
 
정말 국민의 건강에 위해가 되기 때문에 간호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나요?
 
 
의료 단체 간의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법안 또한 정리되어 간호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취지만큼은 변질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 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간호법 원문(pdf), 의료법 원문을 참고하며 각 협회의 주장을 알아보세요!

간호법(대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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